폐의약품, 쓰레기통에서 나온다? – 환경에서 검출된 약물 성분 실태 분석
많은 사람들은 사용하지 않는 약을 쓰레기통에 버리면 그 순간 끝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약은 음식물 쓰레기처럼 쉽게 분해되지 않는다. 정해진 처리 과정을 거치지 않고 생활 쓰레기와 함께 버려진 폐의약품은 소각되거나 매립되지만, 이 과정에서 성분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환경 속에 잔류한다. 특히 항생제, 진통제, 호르몬제 같은 약물 성분은 화학적 구조가 안정적이어서 쉽게 분해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토양, 하천, 심지어 정수 처리된 수돗물에서까지 약물 성분이 검출되는 사례가 보고되고 있다.
문제는 이 현상이 일시적이거나 특정 지역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보편적이고 심각한 환경 문제로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우리가 무심코 쓰레기통에 버린 약 한 알이 생태계와 우리의 건강에 다시 돌아오는 부메랑이 될 수 있다.
환경에서 실제로 검출된 약물 사례
국내외 여러 연구에서는 이미 다양한 약물 성분이 환경에서 검출된 바 있다. 예를 들어, 항생제 성분은 하수처리장 방류수와 하천 퇴적층에서 빈번하게 발견되며, 이는 내성균 확산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다. 진통제인 아세트아미노펜이나 이부프로펜은 강이나 호수에서 낮은 농도로 지속적으로 검출되었고, 일부 지역의 경우 수돗물에서도 미량이 확인되었다. 호르몬제의 경우 더 심각하다. 여성호르몬 유사 물질은 하천에 사는 물고기의 생식 기관을 변화시켜 번식률 감소를 일으켰다는 보고가 있다. 해외에서는 ‘피임약 성분이 물고기 개체군의 성비를 왜곡시켰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우리나라 환경부 조사에서도 전국 하천 100여 곳에서 항생제와 진통제가 미량 검출된 사례가 발표된 바 있다. 이러한 사실은 폐의약품 문제가 단순히 가정 쓰레기 수준을 넘어, 국가적인 환경 위협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검출된 약물이 주는 보이지 않는 위험
환경에서 검출된 약물 성분은 눈에 보이는 직접 피해가 즉각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시민들이 체감하기 어렵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여러 가지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첫째, 항생제 성분은 내성균 문제를 악화시켜 인류가 치료제를 잃어버릴 수 있다는 치명적 위협으로 이어진다. 둘째, 호르몬제나 항우울제 같은 성분은 수생 생태계의 먹이사슬을 교란시키며, 그 영향은 결국 인간에게도 돌아온다. 셋째, 정수 시스템에서 완벽히 걸러지지 않는 약물 성분이 미량이라도 수돗물에 남아 있을 경우, 오랜 기간에 걸쳐 인체 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 임산부와 성장기 아동은 특히 작은 농도의 화학 물질에도 민감하기 때문에 더 큰 위험군이 된다. 결국 쓰레기통에 버려진 폐의약품은 단순한 생활 쓰레기가 아니라, 환경 속에서 ‘보이지 않는 공해’로 변신해 우리 모두를 위협하는 존재가 되는 셈이다.
해결을 위한 사회적 노력과 개인의 실천
폐의약품으로 인한 환경 오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제도와 개인의 노력이 동시에 필요하다. 정부와 지자체는 약국뿐 아니라 주민센터, 편의점, 대형마트 등 생활 거점 공간에도 폐약 수거함을 확대 설치해야 한다. 또한 수거된 폐의약품이 안전하게 소각되도록 관리·감독을 강화해야 한다. 정수 시설에는 약물 성분까지 제거할 수 있는 고도 처리 기술을 단계적으로 도입하는 것이 필요하다. 개인 차원에서는 더 이상 약을 쓰레기통에 버리지 않고, 반드시 지정된 수거함을 찾아 반납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집에서 임시 보관 시에도 밀폐된 용기에 모아두고, 정기적으로 수거 거점을 활용하는 실천이 중요하다. 작은 행동의 변화가 쌓일수록, 우리는 약물 성분이 환경에서 검출되는 현실을 줄여나갈 수 있다. 결국 폐의약품 문제는 정부 정책과 개인의 습관이 맞물릴 때만이 해결될 수 있는, 우리 모두의 공동 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