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의약품

우리동네 약국, 왜 폐의약품 수거함이 없을까?

cloud1news 2025. 10. 19. 13:08

요즘 약을 복용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남은 약을 어떻게 버려야 할지 고민한 적이 있을 것이다. 약을 다 먹지 못하고 남기는 일은 흔하고, 특히 가정마다 유효기간이 지난 약들이 서랍 한켠에 쌓여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하지만 막상 그것을 버리려 하면 방법이 마땅치 않다. 일반 쓰레기에 버리면 안 된다는 이야기는 알고 있지만, 정작 어디에 갖다 놔야 하는지, 누가 받아주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우리동네 약국 폐의약품 수거함

 

정부에서는 약국이나 보건소를 통해 폐의약품을 수거하도록 안내하고 있지만, 현실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동네 약국을 아무리 돌아봐도 폐의약품 수거함이 눈에 띄지 않는다. 약국 직원에게 물어봐도 “지금은 운영하지 않는다”거나 “지자체에서 수거를 안 해간다”는 답변이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 결국 시민들은 불편함을 감수하고 일반 쓰레기로 버리거나, 변기에 흘려보내는 선택을 하게 된다. 이것은 단순한 편의의 문제가 아니라, 환경과 인체 건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심각한 문제로 이어진다.

 

제도는 있지만 현실은 따라가지 못한다

제도적으로는 폐의약품 수거체계가 마련되어 있다. 환경부와 식약처는 이미 수년 전부터 약국과 보건소를 통해 폐의약품을 모으도록 지침을 내리고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 실제로 이 제도가 작동하는 경우는 드물다. 가장 큰 이유는 수거 비용과 관리 책임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약국이 폐의약품을 받아두면, 일정량이 차면 이를 처리 기관이나 지자체로 전달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 필요한 인력과 시간, 그리고 운반 절차에 대한 부담이 모두 약국에 떠넘겨져 있다. 정부의 정책은 있지만 실질적인 지원은 없고, 법적 의무도 명확하지 않다. 약국 입장에서는 수거함을 설치하는 것이 자발적 봉사에 가까운 일이다. 약사 한 명이 하루 수십 명의 환자를 상대하며 조제와 상담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별도의 폐의약품 관리까지 맡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결국 “좋은 취지지만 현실적 여건이 안 된다”는 이유로 많은 약국이 수거를 포기하게 된다. 제도가 현장의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약사들의 부담, 선의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약국의 입장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그들이 겪는 어려움이 단순히 행정적 부담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수거함을 설치하면 시민들이 가져오는 약 중에는 알약뿐 아니라 액상형 의약품, 주사기, 혈당측정침 등 의료폐기물로 분류되어야 하는 물품까지 함께 섞여 있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일반 폐의약품과 달리 별도의 안전 절차를 거쳐 처리해야 하는데, 약국이 그런 전문 장비를 갖추고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또한 수거함에 모인 약이 부패하거나 포장이 훼손되면 악취가 나거나 내용물이 새어 나와 위생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약국 내부의 근무 환경이 나빠질 뿐 아니라, 감염이나 노출 위험도 커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국은 이에 대한 별도의 보상을 받지 못한다. 결국 “도와주고 싶지만 감당이 안 된다”는 말이 현실적인 답이다. 시민이 보기에는 단순히 수거함이 없다는 사실이지만, 그 뒤에는 약사들이 감당해야 하는 복잡한 현실이 숨어 있다.

 

제약사와 지자체의 협력 없이는 답이 없다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약국만의 노력으로는 불가능하다. 우선 지자체가 주도적으로 나서서 약국의 부담을 덜어주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약국은 수거 장소만 제공하고, 일정 주기마다 지자체가 직접 수거하거나 위탁 업체를 통해 회수하는 방식이 되어야 한다. 수거함 설치비와 관리비를 지원하는 예산도 마련되어야 하고, 약사들이 행정적 절차에 얽매이지 않도록 간소화된 시스템이 필요하다. 제약사 역시 생산자로서 일정한 책임을 져야 한다. 약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려면 생산 단계에서부터 폐기 문제를 고려해야 한다. 유럽 일부 국가에서는 제약사들이 판매한 의약품의 일정 비율을 회수하거나, 재활용 가능 포장을 사용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한국도 이런 방향으로 정책을 확대해야 한다. 폐의약품 문제는 한쪽의 선의로 해결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행정, 산업, 소비자가 함께 참여해야만 지속 가능한 구조가 만들어진다.

 

시민 인식의 변화가 진짜 해결책이다

그러나 제도와 구조가 아무리 잘 짜여 있어도 시민의 인식이 바뀌지 않으면 변화는 오래가지 못한다.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약 몇 알쯤 버린다고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버려진 약이 하천으로 흘러가면서 물고기와 조류의 생태에 영향을 주고, 토양에 잔류한 약 성분이 식물에 흡수되어 다시 인간에게 돌아오는 일이 발생한다. 특히 호르몬제나 항생제는 생태계의 균형을 깨뜨릴 수 있는 위험한 물질이다. 따라서 시민 스스로 약을 버리는 일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폐의약품을 따로 모아 약국이나 보건소에 전달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약국이 수거함을 설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시민이 ‘버리는 과정에 참여하는 주체’가 되는 일이다. 한 사람의 행동이 동네 전체의 환경을 바꾸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우리동네우리 동네 약국에 폐의약품 수거함이 없는 이유는 단순히 무관심 때문이 아니다. 제도의 허점, 현장의 부담, 산업의 소극성, 시민의 인식 부족이 복합적으로 얽힌 구조적인 문제다. 하지만 이 문제는 해결할 수 있다. 지자체가 책임을 명확히 하고, 제약사가 사회적 책임을 다하며, 시민이 올바른 배출 습관을 갖는다면 변화는 충분히 가능하다. 폐의약품은 단순한 쓰레기가 아니라 환경과 건강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작은 약국의 수거함 하나가 동네의 의식과 환경을 바꾸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이제는 제도적 논의에 머물 것이 아니라, 실제로 현장에서 작동하는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우리가 오늘 버린 약이 내일의 물이 되고 공기가 된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면, 우리 동네의 약국 풍경은 분명 달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