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의약품 문제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흔히 ‘약을 어디에 버리느냐’에만 주목한다. 그러나 정작 많은 양의 폐기물이 발생하는 지점은 의약품 자체가 아니라 포장재다. 알약을 담는 PTP 포장, 시럽병의 플라스틱 용기, 설명서로 쓰이는 종이 인쇄물까지, 대부분은 약을 다 사용한 뒤 쓰레기로 남는다.
더 큰 문제는 약을 끝까지 사용하지 못하고 남겼을 때, 약과 포장재가 함께 버려진다는 사실이다. 이 과정에서 약 성분이 플라스틱이나 알루미늄 포장에 스며들어, 단순 분리배출이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결국 폐의약품 문제는 약 자체뿐 아니라 포장까지 포함된 복합적 환경 부담으로 확장된다. 그렇다면 만약 의약품 포장이 친환경적으로 바뀐다면, 이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최근 제약업계와 환경 단체가 주목하는 바로 그 지점이 ‘환경 포장’이다.
친환경 포장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적용되나
친환경 포장이란 단순히 재활용이 가능한 포장재를 쓰는 것을 넘어, 전체 생애주기를 고려해 환경 부담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설계된 포장을 의미한다. 의약품 분야에서는 대표적으로 생분해성 소재를 이용한 알약 포장재가 연구되고 있다. 기존 PTP 포장은 알루미늄과 플라스틱을 결합한 형태라 분리배출이 거의 불가능하다. 반면, 친환경 포장재는 일정 기간이 지나면 자연에서 분해되어 별도의 처리 과정이 필요 없다. 또한, 리필형 용기나 다회용 포장 개념을 적용하면 불필요한 쓰레기 발생을 줄일 수 있다. 예를 들어, 시럽약이나 연고는 소용량 리필팩을 따로 제공해 본 용기를 여러 번 사용할 수 있게 하는 방식이 있다. 일부 국가에서는 이미 약 봉투에 식물성 잉크와 재활용 종이를 도입해 플라스틱 포장을 대체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포장 기술 개선을 넘어, 의약품 산업이 환경적 책임을 다하는 중요한 단계라 할 수 있다.
기대되는 효과와 현실적인 제약
환경 포장이 확대된다면 폐의약품 문제를 줄이는 데 여러 긍정적 효과가 예상된다. 우선, 남은 약과 포장재를 분리 처리하기 쉬워져 약 성분이 포장재에 스며들어 재활용을 방해하는 문제를 줄일 수 있다. 둘째, 생분해성 포장재를 활용하면 일부는 생활 폐기물로 버려지더라도 환경에서 빠르게 사라져 장기적인 오염 부담을 줄인다. 셋째, 포장 용량과 방식을 개선하면 필요한 만큼만 제공되어 불필요한 잔약 발생을 예방할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현실적인 제약도 크다. 친환경 포장은 생산 단가가 기존 소재보다 높아 약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또한 의약품은 특성상 밀폐성과 안정성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친환경 소재가 약 성분을 안정적으로 보존할 수 있는지 검증 과정이 필요하다. 결국 친환경 포장이 폐의약품 문제 해결의 보조적 수단은 될 수 있지만, 모든 문제를 단번에 해결하는 ‘만능 해법’은 될 수 없다.
정책과 소비자 인식의 변화가 함께 필요하다
환경 포장을 통해 폐의약품 문제를 줄이려면 제약사 단독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다. 정부 차원에서 친환경 포장재 개발을 장려하는 세제 혜택이나 연구 지원이 필요하다. 또한, 포장 기준을 개정해 재활용 불가능한 소재 사용을 점진적으로 제한하는 제도적 뒷받침도 요구된다. 소비자 인식 변화도 매우 중요하다. 현재 많은 소비자는 약을 받을 때 포장 방식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하지만 친환경 포장이 단순히 환경을 위한 선택이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우리 자신과 가족의 건강을 지키는 길이라는 인식이 확산되어야 한다. 나아가 소비자가 친환경 포장을 선호하고, 친환경 의약품 브랜드를 선택하는 문화가 자리 잡는다면 제약사도 자발적으로 변화에 참여할 것이다. 결국 폐의약품 문제는 단순히 처리 체계의 문제가 아니라, 제조·포장·소비 전 과정에서의 변화가 필요하며, 환경 포장은 그 첫걸음을 제공할 수 있다.
폐의약품 문제는 지금까지 주로 ‘남은 약’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러나 문제를 더 깊이 들여다보면, 약과 함께 버려지는 포장재가 결코 적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환경 포장은 이러한 간과된 영역을 주목하게 한다. 포장이 바뀌면 잔약 발생을 줄이고, 분리배출을 용이하게 하며, 환경에 남는 폐기물 양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물론 기술적·경제적 한계가 여전히 존재하지만, 작은 변화가 쌓이면 큰 차이를 만든다. 지금이야말로 제약업계와 정부, 소비자가 함께 힘을 모아 친환경 포장이라는 새로운 혁신을 현실로 만들어야 할 때다. 포장의 변화는 단순히 쓰레기를 줄이는 수준을 넘어, 폐의약품 문제 해결의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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