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의약품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생활 속 문제이지만, 그중에서도 고령층, 특히 60세 이상 어르신들에게는 더 민감하고 중요한 이슈다. 많은 어르신들이 고혈압, 당뇨, 관절염 등 만성질환을 앓고 있으며, 하루에도 여러 종류의 약을 복용한다. 다양한 병원을 다니며 처방을 받고, 약국에서 일반의약품도 자주 구매하다 보면 약은 자연스럽게 집안에 쌓여가게 된다. 그러나 문제는 이 약들을 어떻게 정리하고, 남은 약을 어떻게 처리하느냐는 데 있다.
실제로 조사에 따르면 어르신의 상당수는 약의 유효기간 개념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고, 약을 정리하거나 폐기하는 방법을 잘 모른다. 일부는 "나중에 다시 쓸 수 있으니까" 하는 생각으로 수년 전 약을 그대로 보관하고 있으며, 또 다른 일부는 일반쓰레기와 함께 버리는 경우도 있다. 이번 글에서는 실제 고령층의 폐의약품 보관 및 폐기 사례를 중심으로, 어르신들이 어떤 방식으로 이 문제를 인식하고 있는지, 현장에서는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짚어본다. 그리고 이를 통해 우리가 무엇을 바꿔야 할지, 어떤 제도적·사회적 지원이 필요한지도 함께 살펴본다.
보관은 오래, 처리 방법은 몰라서 ‘그냥 두는’ 어르신들
서울 송파구에 사는 75세 김모 할아버지는 5년 전 병원에서 처방받았던 혈압약을 아직도 약통 안에 넣어두고 있다. 약 봉투는 바랬고, 알약 색상도 바뀌었지만 김 씨는 “혹시 다시 혈압이 올라가면 먹을지도 몰라서”라는 이유로 폐기하지 않았다. 그는 약을 어떻게 버려야 하는지도 잘 모르고 있었으며, 약국에 가져가면 되는 줄은 알지만 “괜히 번거롭게 할까 봐” 미루고 있었다.
이 사례처럼 많은 어르신들이 남은 약을 폐기하지 않고 수년간 보관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병원에서 받았던 약은 귀하다고 생각해 쉽게 버리지 못하고, “혹시 또 아플까 봐”라는 이유로 남겨두는 경향이 강하다. 또한 약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거나, 복용 목적을 잊어버린 약도 그냥 보관되면서 집 안 곳곳에 ‘약 쓰레기’가 늘어나는 결과를 초래한다. 문제는 이런 약들이 상온에 오래 노출되거나 습기, 온도 변화에 취약한 상태로 방치되면서 위생적으로도 문제가 되고, 실제 복용했을 때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는 위험 요소가 된다는 점이다.
폐기할 줄 몰라 일반쓰레기와 함께 버리는 경우도 많아
경북 안동에 거주하는 80세 이모 할머니는 평소에도 약을 꾸준히 복용하고 있다. 병원마다 약을 중복 처방받는 경우가 많고, 먹다 남긴 약도 많아져 정기적으로 정리를 하고 있지만, 그 방법은 놀랍게도 “약을 신문지에 싸서 일반 쓰레기와 함께 버리는 것”이었다. 이유를 묻자 “약국에 가져가면 받는 줄도 몰랐다”라고 답했고, 보건소에서 수거함이 있다는 사실을 설명하자 “여태껏 그런 이야기를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라고 했다.
이 사례는 정보 접근성 부족이 고령층의 폐의약품 처리 실태를 악화시키는 주요 원인임을 보여준다. 스마트폰 사용에 익숙하지 않거나, 동네 안내문을 읽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어르신들은 자연스럽게 '약은 쓰레기로 버리는 물건'으로 인식하기 쉽다. 실제로 한국환경공단의 자료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층의 약 48%가 “약은 일반쓰레기로 버려도 되는 줄 알았다”고 응답한 바 있다. 이는 약물 성분이 토양과 하천으로 흘러 들어가는 환경오염의 원인이 될 뿐 아니라, 사회 전체가 위험한 내성균 확산과 수질 오염의 위험에 노출되는 결과를 낳는다.
어르신들의 폐의약품 처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수거함을 설치하자”는 접근만으로는 부족하다. 이 문제는 정보 전달 방식, 문화적 인식, 신체적 접근성까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첫째, 약국과 보건소, 주민센터는 단순한 안내문이 아닌 시니어 눈높이에 맞는 구체적 홍보 방식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글자가 큰 리플릿, 그림 중심의 안내 포스터, 마을 방송 등을 통해 폐의약품 수거 요령을 반복적으로 노출하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
둘째, 방문간호사나 요양보호사, 복지관 사회복지사 등의 역할 확대가 중요하다. 이들은 정기적으로 어르신 가정을 방문하거나 전화 상담을 하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약 보관 상태를 함께 점검하고 폐기 요령을 알려줄 수 있다. 셋째, 지자체는 ‘폐의약품 수거 캠페인’을 단기적 행사로 끝내지 말고, 경로당·복지회관 중심의 순회 수거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보건소 차량이 마을을 돌며 약을 수거하거나, 통반장을 통한 약 수거 일정을 운영하는 등의 방식도 효과적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어르신들에게 "남은 약을 버리는 것이 병을 예방하는 첫 단계"라는 마음가짐의 변화를 유도하는 일이다. 약을 보관하는 것이 지혜가 아니라, 적시에 폐기하고 필요한 약만 챙기는 것이 진짜 건강한 노년 생활이라는 메시지를 꾸준히 전달해야 한다. 그 출발점은 우리 모두가 어르신 세대의 현실을 이해하고, 불편을 덜어주는 방식으로 접근하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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