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살면 어떤 공공 인프라든 기본적으로 다 잘 갖춰져 있을 거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환경과 관련된 정책’이나 ‘생활 편의 인프라’는 수도권, 특히 서울에 집중되어 있다는 인식은 오랜 시간 굳어져 왔다. 하지만 폐의약품 수거함만큼은 예외다. 약을 다 먹지 못하고 남긴 채 버려야 할 때, 약국이나 보건소, 주민센터 등에 비치된 폐의약품 수거함을 이용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막상 실천하려고 하면 수거함 자체가 없다는 사실을 마주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서울인데 왜 이런 게 없지?”, “구청에 물어보니까 약국에서 알아서 한다고 하는데요?”, “지금까지 그냥 일반쓰레기로 버렸는데, 누가 알려주지도 않았어요.” 이런 불만이 지역 커뮤니티, 맘카페, 자취생 카페에 꾸준히 올라오는 이유다.
서울이라는 거대한 도시 안에서도 폐의약품 수거함의 설치율과 수거 참여율은 구 단위로 극명하게 차이가 나며, 그에 따라 시민의 실천 가능성과 환경 안전 수준도 달라지고 있다. 이 글에서는 서울시 25개 자치구를 기준으로 폐의약품 수거 정책과 인프라 현황의 편차를 살펴보고, 왜 이런 격차가 발생하는지, 그리고 어떤 구가 실질적으로 ‘수거 선도 지역’이고 어떤 구가 ‘사각지대’로 남아 있는지를 분석해보고자 한다.
강남보다 잘 되는 구가 있다? 서울시 폐의약품 수거 인프라의 현실
서울은 행정적으로 단일 도시지만, 실제 정책 실행 수준은 자치구마다 다르다. 폐의약품 수거 정책 역시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강남구나 서초구 같은 고소득 밀집지역이니까 당연히 수거함도 잘 설치되어 있을 거라는 인식이 있지만, 실제로는 중랑구, 동대문구, 금천구처럼 비교적 소외된 이미지의 자치구가 오히려 더 정기적으로 수거하고, 약사회와의 연계도 활발하다는 사실이 시민들의 기대를 뒤엎는다. 서울시 자치구 중 일부는 지역 보건소가 약사회와 협력하여 폐의약품 수거 대상 약국을 공개하고, 매월 수거 일정을 고지하며, 수거함 설치 여부까지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갖췄다. 반면 다른 구는 보건소나 구청 환경과에 문의하더라도 “우리 구는 약국 자율 수거예요”라는 답변만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구청과 약사회 간의 협력 정도, 민원 응답 체계, 예산 배분 방식에 따라 수거 인프라의 품질이 달라지고 있으며, 그 결과 어떤 구에서는 약국 10곳 중 6곳 이상이 수거함을 갖춘 반면, 다른 구에서는 10곳 중 1곳도 참여하지 않는 지역이 존재한다. 게다가 서울시 전체 차원의 통합 지도나 수거함 위치 데이터베이스는 구축되어 있지 않아, 시민들은 구청마다 전화하거나 인터넷을 뒤져야 수거 가능한 장소를 찾을 수밖에 없다. 정보 접근부터 수거 실행까지 모든 단계가 구별로 달라지는 현실은 결국 시민이 약을 버리는 ‘의지’보다 ‘환경’에 따라 실천이 가능하냐 불가능하냐로 갈리게 만든다.
왜 이런 차이가 생기는 걸까? 제도의 사각과 지자체 의지의 간극
폐의약품 수거는 기본적으로 ‘환경부 가이드라인’에 따라 진행되지만, 설치와 운영은 지방자치단체의 자율에 맡겨져 있다. 즉, 환경부는 ‘수거함을 비치하라’고 권고하지만, 이를 실행할지 여부는 각 구청의 판단이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예산과 인력이 충분한 구는 보건소와 약사회, 주민센터와의 연계를 통해 수거함 설치와 관리, 수거 일정 조율까지 비교적 체계적으로 진행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구는 관련 민원이 들어와야 움직이거나, 일부 약국에 ‘자율적으로 알아서 하라’는 수준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수거함 설치는 단순히 비치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누가 관리할 것인가, 누가 약을 분류하고 포장할 것인가, 수거된 약은 어디로 이송할 것인가 하는 후속 행정이 뒤따라야 하기 때문에 구청과 약사회 간의 협력 없이 진행되기 어렵다. 이처럼 제도적으로는 전 국민이 ‘폐의약품은 따로 버려야 한다’는 의무가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버릴 수 있는 곳이 있는 사람만 실천할 수 있다’는 불공정한 상황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또한 서울시는 광역 차원에서 폐의약품 수거를 통합적으로 관리하거나 모니터링하지 않기 때문에, 각 구의 수거율이나 설치 현황을 비교하거나 공유하는 구조도 마련되어 있지 않다. 시민이 제기한 민원이 많은 구는 움직이지만, 조용한 구는 그대로 방치된다. 이처럼 구 단위 정책 의지, 약사회 협조 수준, 예산 확보 여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폐의약품 수거 인프라의 편차가 발생하고 있다.
시민이 바꿀 수 있다 –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한 실천 방법
서울 안에서도 폐의약품을 제대로 버릴 수 있는지 여부가 내가 사는 구에 따라 달라지는 현실은 분명 개선되어야 할 문제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시민은 무력하지 않다. 오히려 적극적인 정보 확인과 민원 제기를 통해 구청이 정책을 실행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 첫 번째 방법은 내가 사는 구청 홈페이지에서 ‘폐의약품 수거함’ 또는 ‘약국 수거 참여 현황’에 관한 정보가 공개되어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없다면, 국민신문고를 통해 수거함 설치 요청 민원을 구체적으로 제기할 수 있다. 민원은 단 한 건만으로도 환경과나 보건소의 예산 검토 항목에 반영될 수 있으며, 반복 접수되면 공식 대응으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 두 번째는 지역 약국에 수거함 설치 여부를 문의하고, 가능하면 약사회에 제안서를 전달하는 방식이다. 약사들도 수거함 운영에 부담을 느끼지만, 시민의 요청과 구청의 지원이 병행된다면 운영 의지가 높아질 수 있다. 세 번째는 주민센터 또는 동 단위 커뮤니티에 수거함이 있는지 알아보고, 없다면 공동 설치를 요청하는 것이다. 최근 몇몇 구에서는 주민센터가 약국을 대신해 수거함을 운영하는 시범 사업을 실시하고 있으며, 이 모델은 사각지대를 줄이는 데 효과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결국 서울 안에서도 구마다 수거 인프라가 달라지는 문제는 제도적으로는 정비가 필요하고, 실천적으로는 시민 참여가 핵심이다. 우리가 사는 동네에 수거함이 없다면, 그것은 우리 모두가 함께 해결해야 할 지역 문제이며, 해결은 제안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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