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의약품은 환경과 건강을 동시에 위협할 수 있는 생활 속 유해 폐기물이다. 감기약, 진통제, 연고, 항생제 등 가정 내에서 흔히 사용되는 약품들이 제대로 처리되지 않으면, 토양과 수질을 오염시키고 나아가 생태계 교란까지 유발할 수 있다는 사실은 이제 많은 시민들이 인식하고 있다.
환경부 역시 폐의약품은 반드시 약국이나 보건소, 주민센터 등에 마련된 전용 수거함을 통해 배출해야 한다고 안내하고 있으며, 일부 지자체는 폐의약품 수거율을 높이기 위한 캠페인도 활발히 전개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정책이 실질적인 효력을 가지려면, ‘수거함이 실제로 존재해야 하고’, ‘시민이 접근할 수 있어야 하며’, ‘지속 가능한 운영 체계가 마련되어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문제는 대한민국 곳곳에 이러한 조건이 전혀 충족되지 않는 지역이 아직도 존재한다는 데 있다. 특히 약국조차 없는 군 단위 지역에서는 폐의약품을 수거하는 구조 자체가 처음부터 누락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작은 시골 마을에서는 병원은커녕 약국 하나 없이 하루를 보내는 주민이 대다수이며, 주민들은 약을 보건소 외에는 어디서도 구할 수 없다. 약을 쓸 수는 있지만, 버릴 곳은 없는 이 모순적인 상황은 지금도 일부 군 단위 지역에서 반복되고 있다. 이 글에서는 대한민국에서 ‘약국 없는 지역’으로 대표되는 군 단위 지역의 폐의약품 수거 실태를 짚어보고,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한 대안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군 지역의 구조적 문제 – 약국은 없고, 보건소도 멀다
현재 대한민국의 82개 군(郡) 단위 지역 중 상당수는 인구 5만 명 이하의 저밀도 지역이다. 이들 지역에는 1차 의료기관조차 부족한 경우가 많고, 약국은 대부분 읍내 중심지에 한두 곳 정도만 존재하거나, 아예 없는 면 단위 마을도 허다하다. 이 같은 지역에서는 약을 보건소에서 처방받거나, 도시권 병원에 다녀온 뒤 받은 약을 집에서 복용하는 구조가 일반적이다. 그러나 약을 버리려는 시점에서는 문제가 발생한다. 가까운 곳에 약국이 없다 보니, 약을 수거할 공간 자체가 없으며, 보건소까지 가는 거리도 멀어 실제로 약을 정리하고 폐기하는 일은 ‘지금 당장 할 수 없는 일’이 되어버린다. 주민센터 역시 보건소와 연계되지 않은 곳에서는 폐의약품 수거 기능이 없는 경우가 많고, 담당자조차 이 문제에 대해 명확한 지침을 갖고 있지 않다. 결국 폐의약품은 집안 서랍 속, 장농 안, 냉장고 구석에 수개월 이상 방치되거나, 시간이 지나 무심코 일반 쓰레기와 함께 배출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고령 인구가 많은 농촌 지역에서는 약을 버리는 방식에 대한 정보 접근성도 떨어지고, 오랜 관행에 따라 하천이나 화장실 변기에 흘려버리는 일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법적으로 금지된 행위일 뿐 아니라, 공공 보건과 환경에 매우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방치되어서는 안 되는 문제다. 군 지역 주민도 약을 사용하는 만큼, 그에 따른 폐기 책임도 존재하며, 이는 제도적 구조 속에서 함께 해결되어야 할 사회적 과제다.
수거 시스템의 공백 – 누가 이 책임을 떠안아야 할까?
폐의약품 수거 체계는 현재 환경부의 정책 가이드라인에 따라 보건소, 약국, 주민센터를 통해 진행되고 있지만, 이 모든 것은 ‘해당 시설이 존재할 때’에 한정된 이야기다. 약국이 없는 지역에는 수거함을 둘 수 없고, 보건소의 물리적 거리가 멀거나 이동 수단이 제한된 주민에게는 실질적인 접근성이 없다. 더구나 군 단위 지역에서는 폐의약품 수거를 위한 위탁 업체조차 수거 동선을 구성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비용 대비 수거량이 적고, 인력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누구도 수거의 실질적인 책임을 지지 않게 되며, 모든 책임은 결국 주민 개인에게 전가된다. “알아서 버리세요”라는 말은, 도시에서는 약국에 가면 되지만, 군 지역에서는 선택지가 전혀 없다는 점에서 의미가 완전히 달라진다. 이런 구조는 결국 국가 정책의 사각지대가 군 지역 주민에게 불합리하게 작용하는 대표 사례가 된다. 게다가 지역 약사회도 약국이 없으면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없고, 지자체 또한 인력과 예산의 한계로 인해 해당 문제를 우선순위에서 밀어놓는 경우가 많다. 그 사이에서 정작 문제의 중심에 있는 주민은 해결 방안을 스스로 찾지 못한 채, 수년간 약을 집안에 쌓아두거나 아무렇게나 버리는 관행을 이어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이 반복되면, 폐의약품 수거 시스템이 ‘제도는 존재하지만, 현실은 부재한’ 무용지물로 전락하게 된다. 약을 사용할 수 있다면, 그 폐기도 어디에선가 반드시 책임 있게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구조는 그러지 못하고 있다.
가능한 해결책 – 지역 맞춤형 수거 모델이 필요하다
군 단위 지역에서 폐의약품 수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도시 지역과는 다른 ‘지역 맞춤형 수거 시스템’이 필요하다. 첫째, 정기 순회 수거 시스템 도입이 고려될 수 있다. 이는 환경미화 차량처럼 정기적으로 마을을 순회하면서 폐의약품을 수거하는 방식으로, 이미 일부 농촌 지역에서는 폐건전지나 형광등 등에 대해 적용되고 있는 모델이다. 폐의약품 역시 비슷한 형태로 이송 차량이 순회 수거할 수 있으며, 주민센터에서 사전 접수를 받아 일정량 이상이 모이면 수거가 이뤄지는 식으로 운영할 수 있다. 둘째, 보건소의 방문 진료 및 보건사업과 연계한 수거 방식도 가능하다. 이미 농촌 고령자 대상 방문 간호 서비스가 시행되고 있는 만큼, 이때 남은 약을 회수할 수 있도록 보건 인력이 기본 교육을 받고 폐의약품 분류까지 지원하면 효과적일 수 있다. 셋째, 지역 마트나 협동조합, 농협 하나로마트 같은 지역 기반 상점에 임시 수거함을 설치하는 방법도 있다. 군 단위에서는 병원보다 마트 방문 빈도가 높기 때문에, 접근성과 지속성 면에서 유리한 장점이 있다. 마지막으로는 디지털 접근이 어려운 주민을 위한 오프라인 안내 강화가 필요하다. 주민센터, 마을 방송, 리플릿 등을 통해 ‘약은 일반 쓰레기로 버리지 마세요’, ‘폐의약품은 ○○에서 수거합니다’와 같은 정보 제공이 이루어져야 하며, 필요시 마을 이장을 통한 교육도 고려해볼 수 있다. 약국이 없는 지역이라도 주민이 불편을 느끼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환경 정책이며, 모두가 같은 권리를 갖고 있다는 원칙 아래 이루어져야 할 중요한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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