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현재, 폐의약품은 더 이상 단순한 생활 쓰레기로 간주되지 않는다. 환경부는 폐의약품을 ‘생활계 유해폐기물’로 분류하고, 국민 누구나 가까운 약국이나 보건소, 주민센터에 설치된 수거함을 통해 안전하게 배출해야 한다고 안내하고 있다. 감기약, 소화제, 연고, 항생제 같은 일반 의약품뿐 아니라, 유효기간이 지난 알약과 시럽, 사용하지 않은 처방약 등도 모두 지정된 경로로 처리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현실은 이 이상적인 기준과는 거리가 멀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일부 지역에서는 여전히 쓰레기 종량제 봉투에 폐의약품을 넣어 일반 생활 쓰레기와 함께 버리는 일이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으며, 이는 구조적인 문제와 제도적 방치, 시민 인식 부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특히 약국이나 보건소가 멀리 있는 지역, 고령자가 많은 시골 마을, 또는 수거함 설치율이 낮은 도시 외곽 동네에서는 “그냥 일반 쓰레기와 같이 버리는 게 당연한 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이 글에서는 아직도 종량제 봉투를 통해 약이 배출되는 지역의 실태를 점검하고, 왜 이런 일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지, 그리고 어떤 제도적 보완이 필요한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지역별 격차가 만든 폐의약품 ‘일반 쓰레기화’ 현실
종량제 봉투에 폐의약품을 넣어 버리는 문제는 단순한 시민의 실수나 무관심으로만 볼 수 없다.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지역별 폐의약품 수거 인프라의 격차에 있다. 약국이 밀집해 있는 도시 지역은 그나마 수거함을 찾기 쉽고, 보건소나 주민센터에서도 비교적 명확한 안내가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도시 외곽이나 군 단위 시골 마을로 가면 상황은 전혀 달라진다. 약국이 한두 곳밖에 없거나 아예 없는 곳도 있으며, 보건소까지 가는 데 1시간 이상 걸리는 지역도 존재한다. 이처럼 접근 가능한 수거처가 존재하지 않는 지역에서는 시민이 올바른 폐기를 하고 싶어도 방법이 없다. 그렇다고 약을 계속 집에 쌓아둘 수는 없기 때문에, 결국 선택지는 하나다. 쓰레기봉투에 넣고 버리는 것. 게다가 이런 지역에서는 지자체나 주민센터조차 폐의약품 수거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갖고 있지 않거나, 담당자 간 정보 편차가 심해 시민이 문의해도 명확한 안내를 받기 어렵다. 실제로 일부 지자체에서는 ‘알약 정도는 그냥 쓰레기로 버려도 무방하다’는 식의 답변을 하는 경우도 있었고, 그로 인해 시민이 잘못된 정보에 따라 폐기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이처럼 제도가 있는 곳과 없는 곳, 실행되는 곳과 방치된 곳의 간극은 시민의 실천 의지를 무너뜨리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으며, 결국 환경 피해로 되돌아온다.
폐의약품이 일반쓰레기로 배출될 때 생기는 문제는 생각보다 심각하다
약을 쓰레기봉투에 넣어 버리는 행위는 그 자체로 큰 환경적 문제를 야기한다. 먼저, 알약이나 시럽에 포함된 약물 성분은 쓰레기 매립 또는 소각 과정에서 완전하게 분해되지 않고 주변 토양과 수질에 잔류할 수 있다. 특히 매립되는 경우 비가 오면 침출수와 함께 약물 성분이 지하수로 스며들 가능성이 있으며, 이는 생태계 교란을 유발하고 장기적으로 사람의 식수까지 위협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약물 내성의 문제다. 항생제나 진통제가 함부로 배출되면 하수처리장에서 걸러지지 않고 하천으로 흘러들게 되고, 이때 박테리아가 잔류 항생제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서 약물 내성을 가진 ‘슈퍼박테리아’가 발생할 수 있다. 이미 WHO(세계보건기구)는 약물 내성이 세계적인 보건 위협이라 경고한 바 있으며, 이는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닌 인류 건강과 직결된 위기로 간주되고 있다. 게다가 종량제 봉투에 넣어진 약이 사람 손을 거치지 않고 바로 버려지지 않을 경우, 아이나 반려동물이 실수로 복용하는 사고로도 이어질 수 있다. 특히 고령자 가정이나 독거노인의 경우, 약을 분류하지 않고 쓰레기봉투에 섞어두었다가 누군가 잘못 접촉하는 일이 실제로 발생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약을 종량제 봉투에 넣어 버리는 행위는 결코 개인의 문제나 지역적 특수성으로만 치부할 수 없으며, 반드시 구조적으로 교정되어야 할 행정적 과제다.
폐의약품이 종량제 봉투로 배출되는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는 전국 단위의 일괄적 규제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수거 인프라가 부족한 지역에 대한 별도 대책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 첫째, 약국이 없는 지역에는 주민센터나 마을회관, 농협 마트 등 생활 중심 공간을 수거 지점으로 지정할 수 있다. 이는 이미 몇몇 지자체에서 시범 도입 중인 모델이며, 접근성과 지속 가능성 면에서 효과가 검증되고 있다. 둘째, 폐의약품 수거 전용 이동 차량을 활용한 순회 수거 시스템 도입도 필요하다. 예컨대 정기적으로 마을을 방문해 폐건전지, 형광등과 함께 약도 수거하는 시스템은 고령자와 정보 소외계층에게 유용한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셋째, 지자체의 폐의약품 수거 참여 실적을 행정 평가 지표에 반영하는 제도적 장치도 필요하다. 지금은 일부 자치단체만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을 뿐, 대부분은 관심 밖으로 밀려나 있다. 이를 행정 목표로 설정해야 실질적인 변화를 기대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시민 인식 개선도 빼놓을 수 없다. 지역 주민에게 ‘약은 일반쓰레기로 버리는 것이 아니다’라는 점을 반복적으로 알리고, 정확한 수거 위치와 방법을 공공포스터, 안내방송, 지역 SNS 등을 통해 제공해야 한다. 쓰레기봉투는 편할 수는 있어도 정답은 아니다. 더 이상 ‘그냥 봉투에 넣어도 되지 않나요?’라는 질문이 나오지 않도록, 이제는 정책과 실천이 모두 움직여야 할 때다. 폐의약품을 바르게 버리는 일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지역 환경과 국민 건강을 지키기 위한 필수적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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