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은 대한민국 어느 지역에서나 손쉽게 구매할 수 있는 필수 생활재 중 하나다. 감기약, 두통약, 진통제, 소화제 등은 약국을 통해 손쉽게 구입할 수 있고,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 역시 주민 누구나 의료기관을 거쳐 공급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쉽게 손에 들어오는 약은, 사용하고 남은 후부터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로 바뀐다. 바로 ‘폐의약품 처리’라는 문제다. 환경부는 가정 내 폐의약품을 일반쓰레기나 변기, 하수구 등에 버리는 것은 금지하고 있으며, 약국이나 보건소, 주민센터 등에서 마련된 전용 수거함을 통해 안전하게 수거하도록 지침을 내리고 있다. 문제는 이 수거 시스템이 전국적으로 통일되어 있지 않고, 특히 약국의 수거 참여율이 지역별로 큰 편차를 보인다는 점이다.
같은 대도시 안에서도 구마다 다르고, 같은 도(道) 내에서도 군과 시에 따라 수거 시스템이 달라지는 경우도 많다. 어떤 지역은 시민의 참여 의지가 높고 행정도 협력적이라 수거함이 널리 퍼져 있는 반면, 다른 지역은 약국에서 수거를 거절하거나, 수거함 자체가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 그렇다면 지금 대한민국에서 약국을 통한 폐의약품 수거가 가장 잘 이뤄지고 있는 지역은 어디일까? 이번 글에서는 전국 지자체 중 폐의약품 수거율이 높은 상위 10개 지역을 살펴보고, 이들 지역이 어떤 방식으로 시스템을 정착시켰는지, 그리고 다른 지역은 무엇을 참고해야 할지를 구체적으로 분석해 본다.
수거율이 높은 지역은 어떤 공통점을 갖고 있을까?
폐의약품 수거율이 높은 지역은 단순히 약국 수가 많다고 해서 자동으로 수거율이 높은 건 아니다. 오히려 핵심은 ‘약국의 자발적 참여’와 ‘지자체의 행정적 뒷받침’, 그리고 ‘시민 인식’ 이 세 가지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구조다. 수거율이 높은 대표적인 지역은 서울 동대문구, 경기 고양시, 경남 창원시, 부산 해운대구, 전남 순천시, 충북 청주시, 대전 유성구, 광주 북구, 강원도 원주시, 경기도 성남시 등으로, 이들 지역은 지자체와 약사회가 ‘폐의약품 수거 협약’을 체결하고 있으며, 구체적인 실행 계획까지 갖추고 있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고양시는 보건소와 약사회가 협력하여 약국 내 수거함 설치율을 높이고, 수거함이 설치된 약국 리스트를 시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있다. 또한 창원시는 매월 수거 일정을 고지하며, 민원이 들어오면 수거함 설치까지도 행정에서 지원한다. 광주 북구는 주민센터에도 수거함을 확대 배치하고, 약국 직원들을 대상으로 폐의약품 분류 교육까지 시행해 올바른 실천 문화를 정착시켰다. 이처럼 수거율 상위 지역의 특징은 단순히 약국이 많은 것이 아니라, ‘시민이 알고, 약국이 참여하고, 행정이 밀어주는 3단계 구조’를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반대로 수거율이 낮은 지역은 약국에 수거함이 없거나, 약국 직원이 “우린 안 받는다”는 말만 반복하며 시민이 되돌아가는 일이 잦다. 수거함이 없어서가 아니라, 수거 시스템이 ‘살아 있지 않기’ 때문에 실천이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상위 10개 지역의 실제 운영 방식은 어떻게 다른가?
전국에서 폐의약품 약국 수거율이 높은 상위 10개 지역은 각각 고유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만, 공통적으로 운영 체계가 비교적 잘 정돈되어 있다. 동대문구는 관내 약국 중 절반 이상이 수거함을 갖추고 있고, 구청 홈페이지에 수거 약국 명단이 공개되어 있어 시민 접근성이 뛰어나다. 경남 창원시는 약국과 주민센터 양쪽에 수거함을 설치하고 있으며, 관내 모든 보건소가 주기적으로 약국과 연락을 주고받아 수거 일정과 약품 분류 상황을 공유한다. 전남 순천시는 ‘의약품 안전 폐기 주간’을 운영하여 캠페인 형식으로 시민의 참여를 독려하고, 약국 직원에게는 수거 포장 키트를 제공해 참여 부담을 줄이고 있다. 경기 성남시는 수거함을 설치한 약국에 인센티브를 제공하거나, 약국이 자발적으로 수거에 참여하면 홍보성 스티커와 안내 배너를 지원한다. 이처럼 수거율 상위권 지역은 단순히 ‘약국에서 받아줬다’는 수준을 넘어서, 약국과 지자체가 명확한 분업 구조를 갖고 있고, 시민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정보 공개와 교육 활동까지 병행하고 있다. 더불어 일부 지역은 지자체 SNS나 블로그를 통해 수거 참여 약국의 위치를 지도로 제공하거나, 수거함 위치를 모바일 지도로 연동해 시민들이 손쉽게 찾아갈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이런 시스템은 단기간에 형성된 것이 아니라, 꾸준한 민원 대응과 정책 반영, 약사회의 협조 속에서 정착된 것이다. 즉, 폐의약품 수거율이 높다는 건 단순히 숫자 이상의 의미이며, 해당 지역의 환경 의식과 행정 역량, 시민 실천이 종합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폐의약품 수거율 TOP 10 지역은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필요한 실천을 일관되게 해왔기 때문에 가능한 결과다. 그렇다면 수거율이 낮은 지역은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까? 첫째는 정보의 시각화다. 수거 참여 약국 명단을 구청 홈페이지에 올리거나, 지도 형태로 안내해 시민이 쉽게 수거처를 찾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둘째는 약국의 동기 부여다. 수거 참여 약국에 홍보용 인증 마크를 제공하거나, 참여 약국 리스트를 시청 뉴스레터나 블로그를 통해 알리면 시민 유입에도 도움이 된다. 셋째는 민원 접수 활성화다. 시민이 폐의약품을 버릴 수 없다는 불편을 구체적으로 국민신문고에 제기하고, 구청 환경과에 전달하면 수거함 설치 검토가 시작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교육이다. 약국 직원과 보건소 관계자에게 정기적인 분류 방법, 수거 절차 교육이 이뤄져야 잘못된 분리배출로 인한 운영 중단을 예방할 수 있다. 수거함이 있어도 운영이 중단되는 사례는 대부분 약사가 감당하기 어려운 분류 부담이나, 시민의 오 배출로 인한 위생 문제 때문이다. 따라서 시민 역시 정확한 배출 방법을 익히고 실천해야 한다. 지금 당장 우리 지역이 TOP 10 안에 들지 못하더라도, 제도와 시민 참여가 잘 맞물리기만 하면 언제든 상위권 지역으로 올라설 수 있다. 약을 안전하게 버릴 수 있는 환경은 결국 우리가 함께 만드는 것이며, 수거율이 높다는 건 그 지역이 약을 책임지는 문화를 갖고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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