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약국은 폐의약품 수거함이 없다? – 민원 제기부터 설치 요청까지

환경을 생각하고 건강을 지키기 위한 실천 중 하나로 ‘폐의약품을 약국이나 보건소에 버리자’는 인식이 점점 널리 퍼지고 있다. 실제로 환경부와 보건복지부는 가정 내에서 발생하는 먹다 남은 약이나 유효기간이 지난 약을 절대 일반쓰레기로 버리거나 하수구에 흘려보내서는 안 된다고 반복적으로 안내하고 있으며, 약국과 보건소에 비치된 폐의약품 전용 수거함을 통해 안전하게 처리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시민이 실제로 약을 버리러 나섰을 때 예상하지 못한 장벽에 부딪히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폐의약품은 약국으로 가져가세요”라는 정부의 안내에 따라 가까운 동네 약국을 방문했지만, 막상 약국에서는 “저희는 수거하지 않습니다” 또는 “수거함이 없어요”라는 이야기를 듣고 발길을 돌려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환경을 위한 실천을 결심한 시민 입장에서는 상당히 당황스럽고 허탈한 경험일 수밖에 없다. 같은 동네에 사는 친구가 다니는 약국에는 수거함이 설치돼 있다는데, 내가 가는 약국에는 없다는 사실도 의문스럽다. 정부가 캠페인을 벌이는데도 왜 이런 차이가 생기는 걸까? 이 글에서는 폐의약품 수거함이 약국마다 설치되어 있지 않은 이유와 그 행정적 배경을 살펴보고, 만약 우리 동네에 수거함이 없다면 시민이 직접 민원을 제기하고 설치를 요청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까지 단계적으로 안내하고자 한다.

 

수거함이 없는 이유 – 의무가 아닌 ‘자율 설치’의 맹점

폐의약품 수거함은 의외로 모든 약국에 설치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많은 시민들은 수거함 설치가 전국 약국에 의무적으로 적용되는 것으로 오해하지만, 실제로는 ‘의무 설치’가 아닌 ‘자율 협약’에 기반을 두고 운영되고 있다. 환경부는 폐의약품이 하수나 토양에 유입될 경우 환경에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약국과 보건소에 수거함 설치를 권장하고 있지만, 강제할 수 있는 법적 조항은 없다. 약국 입장에서 수거함 설치는 단순히 공간을 내주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가져온 약을 관리하고, 일정 시점마다 보건소나 지정된 수거 업체에 인계해야 하며, 그 과정에서 수거 목록을 정리하고 보건소와 협력하는 행정적 부담도 생긴다. 특히 1인 약사 체제로 운영되는 동네 소형 약국의 경우, 이러한 행정 절차가 결코 가볍지 않다. 이로 인해 일부 약국은 공간 부족, 인력 부족, 관리 부담 등을 이유로 수거 참여를 기피하거나 설치를 포기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여기에 더해 지자체의 정책적 의지나 예산 차이도 영향을 미친다. 어떤 시군구는 약사회와 협업하여 관내 대부분의 약국에 수거함을 설치한 반면, 다른 지역은 예산 부족 또는 행정 우선순위에서 밀려 설치율이 낮은 경우도 있다. 결국 이런 배경으로 인해, ‘같은 지역인데 약국마다 수거 여부가 다르고, 시민은 어디에 버려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 현실로 나타나는 것이다.

 

수거함 설치 요청, 누구에게 어떻게 해야 할까?

만약 내 주변의 약국들 중 그 어디에도 폐의약품 수거함이 없거나, 수거 자체를 거부하는 상황이 반복된다면 시민은 정당하게 민원을 제기하고 설치를 요청할 수 있다. 가장 공식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은 국민신문고를 통한 온라인 민원 제기다. 국민신문고(epeople.go.kr)에 접속해 ‘폐의약품 수거함 설치 요청’이라는 제목으로 약국 위치, 인근 수거함 부재 상황, 시민 불편 내용 등을 구체적으로 작성해 제출하면 민원은 자동으로 해당 지자체의 환경과 또는 보건소로 이관되어 처리된다. 민원 처리 과정에서는 해당 지자체가 약국 또는 지역 약사회와 협의해 수거함 설치 가능 여부를 타진하며, 필요 시 예산을 배정하거나 설치 대상 약국을 물색하게 된다. 국민신문고 외에도, 거주지 시청의 환경과나 보건소에 직접 전화를 걸어 설치 요청을 전달할 수 있다. 어떤 지자체는 전화 민원만으로도 수거함 설치 수요를 파악하여 조치를 취하는 경우가 있으며, 특히 주민센터와 약국이 가까운 경우 보건소 차량이 정기적으로 폐의약품을 수거하는 연계 시스템이 마련되기도 한다. 또 다른 방법은 지역 약사회에 민원을 제기하는 것이다. 지역 약사회는 관내 약국과 보건소를 연결하는 중간자 역할을 하기 때문에, 수거 참여 약국 확대나 행정 지원을 위한 조율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실제로 어떤 지역에서는 주민 10여 명이 공동으로 수거함 설치를 요청한 결과, 약국 두 곳에 신규 수거함이 설치된 사례도 있다. 즉, 개인의 작은 목소리가 지역의 제도적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수거함이 설치된 후, 시민이 해야 할 역할

폐의약품 수거함이 설치되었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수거함이 제 기능을 하려면 시민들이 정확한 방법으로 폐의약품을 분리하고 배출하는 습관을 갖는 것이 필수적이다. 알약, 연고, 시럽, 점안액 등 약 형태에 따라 각각 밀봉된 상태로 봉투에 담아 버려야 하며, 약국은 의약품만 수거 가능하므로 비타민제, 유산균, 파스, 반창고 등 의약외품이나 건강기능식품은 절대 수거함에 넣어서는 안 된다. 실제로 많은 약국에서는 시민들이 분류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약을 수거함에 버리는 바람에 약국 측의 분류 부담이 가중되어 결국 수거함 운영을 중단하는 사례도 존재한다. 따라서 시민은 약을 버릴 때부터 책임 있는 태도를 가져야 하며, 약을 정리한 후 라벨이 남아 있는지, 유효기간이 지났는지, 약물끼리 혼합되지 않았는지 확인하고 분류해 버리는 습관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또 하나 중요한 역할은, 주변 이웃들에게 폐의약품 수거함의 존재와 사용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수거함이 있는지도 모르거나, 수거 방법을 몰라 여전히 일반 쓰레기로 약을 버리고 있다. 내가 실천하고, 이웃에게 알리는 행동이 모이면 지역 전체의 환경 인식과 건강 수준을 바꾸는 힘이 될 수 있다. 수거함 하나가 설치되는 데에는 행정의 노력, 약국의 협조, 시민의 요청이 모두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이 지속적으로 작동하려면 결국 시민의 참여가 핵심이 된다. 지금 우리 동네에 수거함이 없다고 느껴졌다면, 그 상황은 바뀔 수 있다. 행동하는 시민 한 명의 목소리가, 당신의 동네 약국에 수거함을 만드는 시작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