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수많은 가정에서 발생하는 폐의약품은 여전히 ‘사용자의 손’에 의해 처리되고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사용자가 자발적으로 약국이나 보건소에 들러 수거함에 직접 폐약을 버리는 방식이 전부다. 이는 물리적인 이동을 요구하는 매우 수동적인 구조다. 하지만 오늘날 배달 음식부터 헌 옷 수거까지 모든 것이 모바일 앱 하나로 가능해진 시대다. 음식물 쓰레기조차 ‘앱으로 수거 기사 호출’이 가능한 상황에서, 약은 왜 아직도 앱으로 수거를 요청할 수 없는 걸까?
현재의 폐의약품 수거 체계는 디지털 전환의 속도에 한참 뒤처져 있다. 약을 다 먹고 난 뒤 남은 폐약은 종종 몇 달씩 방치되거나, 결국 일반쓰레기로 섞여 버려진다. 그중 상당수는 지방 하수도로 흘러들어가거나 소각 처리되지 않고 자연에 유출된다. 그 피해는 곧 우리 환경, 그리고 다시 인간에게 돌아온다. 이처럼 문제는 분명하고 기술은 충분한데도, 폐약 수거는 여전히 20세기형 시스템에 묶여 있는 상황이다.
헌옷 수거는 되는데, 약 수거는 왜 안 될까?
지금 이 순간에도 전국 곳곳에서는 헌 옷 수거, 재활용품 회수, 심지어 폐가전 방문 수거 서비스가 앱 기반으로 실시간 운영되고 있다. 서울시의 ‘청소연구소’, 인천의 ‘수거박사’, 그리고 전국적으로 쓰이는 ‘오늘의 수거’ 앱 등은 이미 시민들이 생활폐기물을 손쉽게 버릴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이 모든 서비스가 개인 맞춤형으로 작동한다는 점이다. 사용자가 직접 앱에 접속해 수거를 요청하고, 위치 기반으로 기사나 수거원이 배정되는 구조다. 그렇다면 폐의약품도 이런 구조로 운영될 수 없을 이유가 있을까? 기술적으로는 불가능하지 않다. 폐약은 그 특성상 민감한 품목이기 때문에 별도 분류 및 수거 기준이 필요하지만, 이를 시스템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은 이미 존재한다. 예를 들어, 약국과 보건소에 등록된 ‘공공 수거 거점’을 중심으로, 시민이 폐약 수거를 앱으로 요청하면, 일정 수량 이상 모였을 때 관할 보건소 또는 수거 대행업체가 방문하여 회수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편리함’의 문제가 아니라, 장기적으로 수거율을 높여 환경오염을 줄일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있다.
앱 기반 폐의약품 수거, 실제로 가능한 시스템일까?
현실에서 이런 모바일 기반 수거 시스템을 도입하려면 몇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첫째는 수거 주체의 명확화다. 현재 폐의약품 수거는 주로 약국, 보건소, 일부 지자체가 담당하고 있는데, 이들이 앱 시스템에 어떻게 참여할 수 있을지에 대한 구조적 설계가 선행돼야 한다. 예를 들어, 약국이 자체 수거 데이터를 앱에 등록하면, 보건소는 이를 수거 일정에 반영하고, 사용자는 앱을 통해 자신이 보관 중인 폐약 정보를 등록하거나 픽업 요청을 할 수 있다. 둘째는 데이터 연동과 사용자 인증 문제다. 약은 민감한 개인정보와 연결될 수 있기 때문에, 단순한 쓰레기 수거 앱처럼 처리할 수는 없다. 사용자 인증을 위해 본인 명의의 핸드폰 인증이나, 복약 내역 연동 같은 절차가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기술적으로 충분히 구현 가능하다. 이미 건강보험 앱이나 병원 예약 시스템은 본인 인증을 기반으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셋째는 비용과 인센티브 구조다. 단순 회수가 아닌 일정 수량 이상 회수 시 마일리지 적립, 공공포인트 제공 등 친환경 실천에 대한 보상이 주어질 수 있다면, 사용자 참여율은 더 높아질 것이다. 결국 중요한 건 ‘기술의 한계’가 아니라, ‘실행 의지’의 문제다.
지금이 ‘모바일 수거 서비스’ 도입의 적기다
환경부는 매년 폐의약품 수거율 향상을 위한 캠페인을 벌이고 있지만, 여전히 전국의 실제 수거율은 배출량 대비 30% 미만에 그친다. 이는 곧 70%의 약이 어디론가 사라지고 있다는 의미다. 특히 온라인 약 배송과 자동 리필 서비스가 늘어나면서, 가정 내 방치되는 약은 더욱 늘어나는 추세다. 문제는 이 약들이 결국 일반 쓰레기로 버려지거나, 유통기한이 지난 채 방치된다는 것이다. 이럴 때 가장 필요한 것은 사용자의 자발성을 유도할 수 있는 직관적이고 쉬운 플랫폼이다.
그 시작은 ‘폐의약품 모바일 수거 앱’일 수 있다. 이미 민간 앱 개발자들은 다양한 공공 데이터를 연동한 수거 플랫폼을 개발해 성공시킨 경험이 있다. 이제 남은 건 보건당국과 지자체의 공식 참여와 제도 설계다. 폐약 수거는 결코 선택이 아닌 책임 있는 소비의 마지막 단계다. 기술이 준비된 지금, 행동해야 할 주체는 시민이 아니라 정책 결정자와 시스템 설계자들이다. 더 이상 수거함만 설치해놓고 “알아서 가져오라”는 방식은 시대에 맞지 않는다. 지금이야말로 ‘앱으로 약 수거 요청하는 시대’의 첫걸음을 내딛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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