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의약품 문제는 해마다 심각해지고 있지만, 여전히 처리 시스템은 ‘약국’ 중심의 제한된 구조 안에 갇혀 있다. 특히 약국 방문이 어렵거나, 주변에 수거함이 없는 지역의 주민들은 여전히 사용하지 않은 약을 일반 쓰레기와 함께 버리는 일이 많다. 보건소나 지자체는 약국에 수거함 설치를 독려하고 있지만, 약국 외의 수거 채널은 거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질문을 바꿔보자. 우리는 꼭 약국에만 약을 버려야 할까? 만약 동네 어디에나 있는 편의점에서 폐의약품을 수거할 수 있다면, 수거율은 지금보다 훨씬 높아지지 않을까? 이 글에서는 현실적으로 가능한 대안으로써, ‘민간 유통 채널’ 특히 편의점의 역할 가능성을 살펴본다. 편의점은 24시간 운영되며, 국민 생활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공간이다. 폐의약품 수거율을 높이고 환경오염을 줄이기 위해, 이 공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할 때다.
24시간 열려 있는 편의점, 약 수거함 설치에 가장 유리한 공간
대한민국에는 2025년 현재 기준 약 5만 2천여 개의 편의점이 운영되고 있다. 이 중 상당수는 주택가, 아파트 단지, 농촌 면소재지 등 약국이 없는 지역에 위치해 있다. 게다가 편의점은 24시간 운영, 연중무휴, 접근성 최고라는 장점을 갖고 있어, 단순한 소비 공간을 넘어 생활 인프라 거점으로 기능하고 있다. 최근에는 공공 마스크 판매, 정부 지원금 수령, 택배 접수 등 공공과 민간을 연결하는 생활 플랫폼 역할까지 수행하고 있다. 이러한 특성을 고려하면, 편의점 내 폐의약품 수거함 설치는 매우 현실적인 아이디어다. 약국 운영시간에 맞춰야 하는 기존 구조보다 훨씬 유연하고, 접근성 또한 뛰어나다. 특히 폐약을 수거함에 넣기 위해 먼 보건소를 찾아가야 하는 번거로움을 해소할 수 있다. 만약 전국 편의점 중 일부라도 시범적으로 수거 기능을 부여받는다면, 수거 접근성이 획기적으로 개선될 수 있다. 예를 들어, CU, GS25, 세븐일레븐 같은 대형 편의점 브랜드와 지자체가 협약을 맺고 폐약 수거함을 설치하는 구조도 가능하다.
민간 기업이 약을 수거해도 괜찮을까? 제도적 과제는 분명하다
물론 편의점이 폐의약품을 수거하는 구조에는 반드시 넘어야 할 제도적 장벽이 존재한다. 현재 ‘약사법’에 따르면, 의약품의 보관·수거·폐기는 일정한 자격을 갖춘 기관이나 인력이 수행해야 하며, 민간 유통점이 이 과정에 참여하는 것은 법적 모호성이 있다. 약은 의약품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일반 쓰레기나 헌 옷처럼 단순 수거가 아니라 관리 대상 폐기물로 간주된다. 즉, 단순히 수거함을 설치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수거 이후 이송, 보관, 폐기까지의 모든 절차가 안전하게 관리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제도적 문제는 ‘민관 협력 체계’를 통해 충분히 해결 가능하다. 예를 들어 편의점은 단순 보관만을 맡고, 정기적으로 약국이나 지자체가 회수하도록 구조를 설계할 수 있다. 편의점에 수거함을 비치하되, CCTV 상시 녹화, 내부 출입 통제 등 보안 장치를 강화한다면, 의약품 보관 기준을 충족할 수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법률적 불가능이 아니라, 제도 설계와 협력 의지다. 실제로 미국 일부 주에서는 슈퍼마켓, 드럭스토어에 약 반납함이 설치되어 있고, 해당 지역 공공기관이 회수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편의점 수거 체계,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기 위한 조건
편의점에서 폐의약품을 수거하는 체계가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실질적인 조건과 절차가 필요하다. 첫째, 지자체와 편의점 본사 간의 공식 협약이 선행되어야 하며, 공공기관이 주체가 되어 수거 기준과 책임 구조를 명확히 해야 한다. 둘째, 시민이 쉽게 이해하고 사용할 수 있도록 명확한 안내와 캠페인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약국과 마찬가지로, 어떤 약을 넣어야 하고, 어떤 약은 수거 대상이 아닌지를 구분하는 가이드가 제공돼야 한다. 셋째, 수거 후 처리 과정의 투명성 확보도 필수다. 단순히 수거만 하고, 이후 처리 과정이 불분명하다면 오히려 시민 불신을 키울 수 있다. 마지막으로는, 인센티브 기반 참여 확대가 고려될 수 있다. 예를 들어 폐약 1회 수거 시 포인트를 제공하거나, 종량제 봉투 할인 등의 혜택을 연계하면 참여율은 크게 높아질 수 있다. 폐의약품 수거는 이제 더 이상 약국만의 책임이 아니다. 생활밀착형 공공 서비스의 새로운 거점으로 편의점이 주목받아야 할 때다. 기술도, 공간도, 제도도 모두 가능하다. 남은 것은 실행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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