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주변에는 사용하지 않은 약이 생각보다 쉽게 쌓인다. 감기약, 소화제부터 항생제나 진통제까지, 병원 진료 후 남은 약은 가정의 서랍 속에 오래 방치되곤 한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 약들이 제대로 폐기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현재 폐의약품 수거 체계는 대부분 약국과 보건소에 국한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 생활에서는 약국까지 일부러 약을 들고 가는 일이 번거롭고, 영업시간이 지나면 아예 수거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이런 제약 때문에 여전히 많은 시민들이 폐의약품을 일반 쓰레기봉투에 넣거나 변기에 흘려버리는 방식으로 처리한다. 이로 인해 환경에 약 성분이 유입되고, 의도치 않은 사고로 이어지는 사례까지 발생하고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던지는 질문이 있다. “편의점에서 버릴 수는 없나요?” 편의점은 24시간 열려 있고,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생활 거점이기에 폐의약품 수거의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편의점은 왜 최적의 수거 거점이 될 수 있는가?
편의점은 단순히 간식과 음료를 파는 공간을 넘어 이미 생활 플랫폼으로 기능하고 있다. 택배 접수, 공과금 납부, 교통카드 충전, 심지어 정부 지원금 수령까지 가능한 곳이 바로 편의점이다. 전국 어디서든 쉽게 찾을 수 있고, 도서 산간 지역에도 일정 비율로 설치되어 있다는 점은 접근성을 크게 높여준다. 만약 편의점에 폐의약품 수거함이 설치된다면, 약국이 부족한 지역이나 약국 운영시간에 맞추기 어려운 시민들에게 새로운 선택지가 될 수 있다. 특히 농어촌이나 군 단위 지역은 약국이 멀리 떨어져 있어 약을 모아두다 결국 쓰레기통에 버리는 경우가 많은데, 편의점은 이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공간이다. 실제로 해외 일부 지역에서는 대형 마트나 드럭스토어에 약물 반납함을 설치해 운영하고 있으며, 약국만큼이나 시민들의 참여율을 높이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도 편의점이 ‘제2의 수거 인프라’로 자리 잡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법적 장벽과 관리 문제, 넘어야 할 과제들
물론 현실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의약품은 단순 생활폐기물이 아닌 관리 대상 폐기물이기 때문에, 민간 유통 채널이 직접 수거 업무를 맡는 데에는 제도적 장벽이 크다. 현재 ‘약사법’은 의약품 보관과 폐기를 일정 자격을 갖춘 기관만이 담당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편의점에 수거함을 설치한다 해도, 단순 보관을 넘어 수거 이후 운송, 보관, 소각까지의 절차가 명확히 마련되지 않으면 제도 위반 소지가 생긴다. 또한, 편의점 특성상 불특정 다수가 이용하기 때문에 약물이 불법적으로 유출되거나, 청소년이 쉽게 손에 넣을 위험도 배제할 수 없다. 이 때문에 만약 편의점 수거가 도입된다면, 보안 장치와 회수 관리 시스템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 예컨대 수거함은 잠금장치가 달린 밀폐형 구조로 제작하고, CCTV가 설치된 공간에만 두는 방식이다. 이후 정기적으로 약국이나 지자체가 회수해 가는 구조를 도입한다면, 법적 기준을 충족하면서도 현실적인 운영이 가능해질 것이다. 결국 문제는 ‘불가능하다’가 아니라, 어떻게 제도를 설계하느냐에 달려 있다.
편의점 수거, 공공성과 민간의 협력으로 현실화할 수 있다
편의점에서 폐의약품을 수거하는 체계는 단순히 편의성 향상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이는 곧 시민 참여율을 높이고, 환경 피해를 줄이며, 공공성과 민간이 협력하는 새로운 사회 모델로 발전할 수 있다. 정부와 지자체가 수거 비용을 지원하고, 편의점 본사는 공간과 인프라를 제공하는 방식의 공공-민간 파트너십이 핵심이다. 또한, 시민에게 폐의약품을 가져오도록 유도하기 위해 소규모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폐약을 수거함에 넣으면 포인트 적립이나 할인 쿠폰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이는 단순히 ‘환경을 위한 참여’에서 나아가, 생활 속에서 체감 가능한 보상을 주어 참여율을 높이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앞으로 폐의약품 문제는 더 이상 약국만의 과제가 아니다. 약국과 보건소를 넘어, 생활 속 모든 공간에서 쉽게 참여할 수 있는 수거 인프라를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그리고 그 첫걸음으로, 국민과 가장 가까운 편의점이 새로운 수거 거점으로 주목받아야 한다. 결국 “편의점에서 버릴 수는 없나요?”라는 질문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현실적 과제가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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