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은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치료제이지만, 사용이 끝난 후에는 환경과 건강을 위협하는 위험 요소가 될 수 있다. 특히 가정에서 남은 약, 유효기간이 지난 약, 처방받고 복용하지 않은 약 등은 잘못된 보관이나 폐기로 인해 수질 오염, 토양 오염, 사고 유발 등의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정부는 약국과 보건소 중심의 폐의약품 수거 정책을 통해 시민의 안전한 배출을 유도하고 있지만, 정작 많은 국민들은 이런 제도의 존재를 잘 모르거나, 알고 있어도 실천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약을 제대로 폐기하지 않을까? 국민들은 약 폐기 문제를 얼마나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을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보건복지부와 환경부, 한국환경공단 등에서 수행한 최근 폐의약품 관련 국민 인식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우리의 현실을 객관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이번 글에서는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국민 인식의 문제점과 개선 방향을 짚어보며, 약의 올바른 폐기가 곧 개인 건강과 공공환경을 동시에 지키는 일임을 강조한다.
국민 인식 조사 결과 – 알고 있지만, 실천은 부족하다
2024년 환경부가 전국 17개 시·도 3,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폐의약품 인식 및 배출 실태 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약 78%는 “폐의약품이 환경에 유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러나 실제로 “전용 수거함에 버린 경험이 있다”라고 응답한 비율은 21%에 불과했다. 다시 말해, 10명 중 8명은 폐기 위험성을 알고 있지만, 실제 실천하는 사람은 2명도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조사에서 가장 큰 원인은 ‘어디에 버려야 할지 몰라서(42.7%)’였고, ‘근처에 수거함이 없어서(29.3%)’, ‘약국에서 받지 않아서(12.6%)’라는 응답도 뒤를 이었다. 또 다른 조사에서는 60세 이상 고령층의 절반 이상이 “약은 쓰레기와 함께 버려도 되는 줄 알았다”라고 답하기도 했다. 이는 단순한 무관심이 아니라, 정보 접근성 부족과 홍보 부족, 그리고 약국·보건소 등 수거 시스템의 불균형으로 인해 발생한 구조적 문제다. 즉, 국민들은 폐의약품에 대한 개념은 갖고 있지만, 실제 행동으로 옮기기 위한 정보와 동기가 부족한 상황이다.
인식 부족이 초래하는 생활 속 위험들
국민 인식이 낮고, 실천율이 떨어진다는 것은 단순한 행정 문제가 아니다. 이는 직접적인 생활 속 사고와 환경 피해로 이어진다. 보건소 및 응급의료센터에서 보고된 최근 3년간 사례 중, 어린이가 가정에서 남은 약을 오용해 병원으로 이송된 경우는 연평균 1,200건 이상으로 추산된다. 이들 사고의 대부분은 부모가 유효기간이 지난 약을 정리하지 않고 보관했거나, 잠금장치 없는 장소에 두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또한 하수처리장 연구 결과, 하수 내 검출된 항생제, 진통제, 수면제 성분 중 약 30%는 가정에서 직접 버려진 폐의약품에서 기인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정화되지 않은 약물 성분이 하천과 해양 생물에 영향을 미치고, 결국 인간에게 다시 되돌아올 수 있다는 위험성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약 한 알을 제대로 버리지 않는 일이 수천 명의 건강을 위협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든다는 것이다. 이런 현실은 폐의약품에 대한 국민 인식 수준을 단순한 개인 위생 개념이 아닌, 공공안전과 환경 정의의 문제로 끌어올려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실천을 위한 인식 개선 방안과 행동 지침
국민 인식과 실천의 간극을 줄이기 위해선 단순한 홍보를 넘어선 생활밀착형 교육과 인프라 개선이 필요하다. 첫째, 지자체는 폐의약품 수거 위치 정보를 모바일 앱, 포털 검색, 동 주민센터 게시판 등 다양한 채널로 공개해야 한다. 수거함의 위치를 모르면 아무리 의지가 있어도 실천이 어렵기 때문이다. 둘째, 약국과 보건소는 약을 수거하는 곳이자 폐기 방법을 안내하는 교육 공간으로 역할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약 봉투에 폐기 안내문을 부착하거나, 약사들이 수거함 이용을 적극적으로 유도하면 실천율은 자연히 올라갈 수 있다.
셋째, 초·중등학교 교과 과정과 지역 커뮤니티를 통한 약물 안전교육 강화도 중요하다. 폐의약품을 단순한 ‘환경 쓰레기’가 아닌 생활 속 사고의 원인으로 교육해야 실질적인 행동 변화가 뒤따를 수 있다. 넷째, 정부는 일정 기간 동안 폐의약품 수거 인증 캠페인이나 소정의 포인트 제공 등을 통해 국민의 참여를 유도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시민 개개인은 정기적으로 약 보관함을 점검하고, 사용하지 않는 약은 수거함에 버리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인식은 말이 아니라, 반복된 실천을 통해 자리 잡는다. 올바른 약 폐기는 단순한 정리정돈이 아니라, 우리의 건강과 공동체 안전을 지키는 시민의 책임이다.
실천 없는 인식은 의미 없다
많은 사람들이 폐의약품의 위험성을 알고 있다. 하지만 알고 있다고 해서 환경이 보호되는 건 아니다. 실제로 분리배출을 하지 않는다면, 그 지식은 아무 쓸모가 없다. 국민 인식 조사는 우리가 어느 지점에 서 있는지를 알려주는 지표일 뿐이다. 진짜 중요한 건 그다음이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아마 ‘남은 약이 있긴 한데 그냥 두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당장 약 봉투를 확인해 보자. 사용하지 않는 약이 있다면, 버릴 수 있는 곳을 검색하고 행동으로 옮겨보자. 인식은 행동으로, 행동은 문화로, 문화는 결국 사회를 바꾼다. 오늘 실천한 약 하나가 건강한 내일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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