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의약품은 국민 누구나 배출할 수 있는 생활 속 유해 폐기물이다. 먹다 남은 약, 유통기한이 지난 약, 복용하지 않는 처방약 등은 반드시 전용 수거함에 넣고 분리 배출해야 한다. 이를 위해 환경부는 전국 약국, 보건소, 일부 공공기관에 폐의약품 수거함 설치를 권고하고 있으며, 각 지방자치단체는 이에 따라 개별적인 수거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제도는 전국 공통이지만 운영 주체가 각 지자체이다 보니 실제 시민이 체감하는 수거 서비스 품질에는 지역 간 차이가 뚜렷하게 나타난다.
어떤 도시는 수거함 위치를 지도와 앱으로 안내하고 있지만, 어떤 도시는 약국을 돌며 수거 여부를 직접 물어봐야 하는 수준이다. 이번 글에서는 인구 10대 도시(서울, 부산, 대구, 인천, 광주, 대전, 울산, 수원, 고양, 용인)를 중심으로 폐의약품 수거 정책의 실제 운영 차이를 비교해보고, 시민 입장에서 어떤 점이 불편하고, 어떤 도시는 모범적인 운영을 하고 있는지를 정리해본다.
서울, 수원, 고양 – 정보 공개와 시스템 연계가 잘 된 도시들
서울시는 폐의약품 수거 정책에 있어 가장 선도적인 도시 중 하나다. 25개 자치구 모두 약국, 보건소, 일부 주민센터에 수거함을 설치하고 있으며, 서울시 보건환경연구원 사이트와 각 구청 홈페이지를 통해 수거 위치를 공지하고 있다. 강남구, 서대문구, 강서구 등 일부 자치구는 수거함 위치를 인터랙티브 지도 형태로 제공하여 접근성을 높였다. 수거량 통계도 연 1회 이상 공개되며, 시민 대상 교육도 정기적으로 진행된다.
수원시는 경기도 내에서도 환경정책이 강한 도시로 꼽힌다. 수원시청은 환경정책과 산하에 ‘폐의약품 전담 민원 처리창구’를 두고 있으며, 보건소와 약사회 간 정례 회의를 통해 수거 프로세스를 개선하고 있다. 특히 수원시는 아파트 단지별 약 수거함 설치 시범 사업도 일부 시행 중이다. 고양시는 상대적으로 지자체 규모에 비해 효율적인 시스템을 갖춘 도시다. 고양시보건소는 지역 내 약국 리스트와 수거함 설치 여부를 표로 제공하며, 문의 시 친절한 안내를 받을 수 있다. 서울, 수원, 고양의 공통점은 시민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디지털과 오프라인을 동시에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부산, 대구, 인천 – 제도는 있으나 시민 체감은 낮은 도시들
부산시는 환경부 지침에 따라 폐의약품 수거함을 설치하고 있지만, 실제 시민의 체감 만족도는 낮은 편이다. 구청 및 보건소 홈페이지에 수거함 위치 정보가 게시되지 않은 경우가 많고, 약국 방문 시 수거 여부를 명확히 안내받지 못하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일부 자치구에서는 약사 본인의 판단에 따라 수거를 거절하는 경우도 있다. 특히 낙후된 지역이나 해안가 소규모 동에서는 수거 인프라가 거의 없는 수준이다.
대구시는 폐의약품 수거 정책이 보건소 중심으로만 운영되는 구조다. 약국과의 연계가 약하고, 시민들이 약국에 수거함이 있다고 기대했다가 되돌아오는 경우도 많다. 대구시청 홈페이지나 각 구청 보건소 페이지에서도 관련 정보가 잘 노출되지 않으며, 오직 전화 문의를 통해서만 위치 확인이 가능하다. 인천은 수도권임에도 불구하고 폐의약품 정책에 있어 소극적인 운영을 보여주고 있다. 구청 간 운영 수준 차이가 심하고, 수거함 수가 인구 대비 적으며, 민원 제기 후 설치까지의 반응 속도도 느리다는 지적이 있다. 이 세 도시는 모두 시스템은 존재하지만 운영 관리, 시민 안내, 정보 투명성 측면에서 개선이 필요하다.
광주, 대전, 울산, 용인 – 중간 단계 도시들의 특징과 개선 방향
광주시는 폐의약품 수거 체계를 보건소 중심으로 안정적으로 구축하고 있다. 구별 보건소에는 수거함이 마련되어 있고, 관내 약국 중 일부는 수거 연계가 되어 있다. 다만 시민들이 수거함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홍보 부족이 문제다. 홈페이지에서도 정보가 단편적이고, 지도 형태로 제공되지 않는다. 대전시는 최근 몇 년 사이 수거함 설치를 늘리고 있으나, 온라인 정보 제공은 거의 없는 수준이다. 약국에 직접 전화하거나 방문해 확인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으며, 수거된 약의 처리 방식에 대한 설명도 공개되어 있지 않다.
울산시는 산업도시로서 환경 이슈에 민감하지만, 폐의약품 수거는 일부 지역에만 집중되어 있다. 남구·중구 등 중심 지역에는 수거함이 있지만, 외곽 지역은 설치율이 낮아 지리적 불균형이 문제다. 용인시는 도시 면적이 넓고 분산형 구조이기 때문에 구 단위 수거함 설치 비율이 들쭉날쭉하다. 수거 정보 역시 각 구청별로 달라, 통합 관리가 부족한 실정이다. 이들 도시의 공통점은 운영 의지는 있으나 시민이 쉽게 이용하기 어려운 시스템이라는 점이다. 앞으로는 지역 보건소와 약사회가 협력해 수거 위치 지도화, 모바일 연계, SNS 홍보 등을 강화해야 실효성 있는 정책으로 발전할 수 있다.
폐의약품 수거, 행정 격차가 환경 격차로 이어진다
폐의약품 수거는 개인의 양심에 맡겨지는 문제 같지만, 사실은 행정 시스템의 수준과 깊이에 따라 시민의 참여율이 달라지는 구조다. 이번에 살펴본 전국 10대 도시의 폐의약품 수거 정책은 법적으로는 유사하나, 실행 수준은 현저히 다르다. 어떤 도시는 지도를 통해 수거 위치를 안내하고, 약국·보건소 간 연계를 체계적으로 구축해 시민 편의를 높이고 있지만, 어떤 도시는 여전히 ‘직접 가서 물어보는’ 방식에 머물러 있다. 환경은 지역의 벽을 넘어서 연결되어 있다. 한 도시의 관리 소홀은 결국 국가 전체의 수질, 토양, 생태계에 영향을 미친다. 지금 필요한 건 전국 어디서나 동일한 수준의 폐의약품 수거 체계가 작동하는 것이다. 지자체별 격차를 줄이는 일이 곧 국민의 건강과 환경을 지키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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