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의약품을 생활필수품처럼 여긴다. 감기약, 소화제, 진통제, 처방 약 등은 가정 내에서 상시 보관되는 물건 중 하나다. 하지만 대부분은 먹다 남기거나 유통기한이 지난 채 약 봉투에 담겨 서랍 속 어딘가에 방치된다. 이처럼 처치 곤란한 폐의약품은 결국 어느 순간 ‘그냥’ 일반 쓰레기봉투에 담겨 버려지거나, 세면대나 변기에 흘려보내지는 일이 흔하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우리가 무심코 버린 약 봉투 하나가 토양과 수질을 오염시키고, 생태계를 교란하며, 다시 우리 몸으로 돌아올 수 있는 구조를 만든다는 점이다.
이 글은 폐의약품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과 함께, 우리 사회의 폐의약품 처리 실태를 다양한 각도에서 분석해 본다. 이 순간에도, 당신의 약 봉투는 환경을 위협하고 있을지 모른다.
폐의약품, 수거 체계는 존재하지만, 현실은 ‘방치’ 상태
한국에는 폐의약품을 수거하기 위한 제도적 기반이 분명히 존재한다. 환경부는 전국 약국과 보건소에 폐의약품 수거함 설치를 권고하고 있고, 의약품 제조·수입업체는 의무적으로 약품 회수·폐기를 위한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그러나 제도가 있다고 해서 현장이 잘 운영되는 건 아니다. 실제 약국 10곳 중 3곳 정도만이 눈에 띄는 위치에 수거함을 배치하고 있으며, 어떤 약국은 폐의약품을 가져다줘도 "받지 않는다"며 거부하는 경우도 있다. 약국 직원들도 폐의약품의 분류 기준을 명확히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수거 후 보건소로의 이송 과정도 일관되지 않는다. 일부 지자체는 운반 인력이 부족해 수거함이 꽉 찼는데도 방치되는 경우도 발생한다. 결국 시민 입장에서는 ‘버리러 갔는데 안 받아줬다’는 불편함만 쌓이고, 다음엔 그냥 쓰레기통에 버리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시민 인식 부족과 교육의 부재
가장 큰 문제는 시민들의 인식 부족이다. ‘약은 쓰레기 아닌가요?’라는 질문을 하는 사람은 의외로 많다. 시민들은 약을 일반 쓰레기처럼 취급하는 경향이 강하며, 폐의약품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자세히 배운 적도 거의 없다. 학교 교육과정에도 약물 안전 사용이나 폐기의 중요성을 다루는 내용은 매우 제한적이고, 정부 차원의 홍보 역시 부족하다. 실제로 최근 한 조사에서는 폐의약품이 수질 오염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응답자가 전체의 30%에도 못 미쳤다. 심지어 일부 고령층은 약의 유효기간 개념조차 명확히 모르고 있으며, "약은 그냥 땅에 묻으면 된다"는 식의 잘못된 정보를 그대로 믿는 경우도 많다. 즉, 폐의약품 문제가 단순히 수거함의 위치나 약국 협조 여부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는 국민 전반의 ‘의약품 폐기 문화’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출발한다.
환경에 미치는 영향과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폐의약품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생각보다 심각하다. 일부 연구에 따르면, 하수 처리 시설을 거친 후에도 항생제 성분이 하천이나 토양에 남아 있는 경우가 흔하다. 이에 따라 생태계의 미생물 균형이 무너지고, 항생제에 내성을 가진 균이 발생할 수 있다. 특히 호르몬제가 섞인 약물은 수중 생물의 생식 기능에 영향을 미쳐 개체 수 감소를 유발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수질 기준은 선진국 대비 여전히 느슨한 편이며, 약물 오염을 잡아내는 시스템도 미흡하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가장 현실적인 첫걸음은 가정에서 정기적으로 약 봉투를 점검하고, 유통기한이 지난 약은 따로 모아 가까운 약국이나 보건소의 수거함에 넣는 것이다. 더 나아가, 본인이 거주하는 지역에 수거함이 없다면 민원을 제기하거나 설치를 요청하는 시민 참여도 중요한 실천이다. 약국에서 수거를 거부했을 경우, 지역 보건소에 이 사실을 전달해 제도를 개선할 수 있도록 협조를 요청할 수 있다.
사소한 실천이 만든 변화
약은 건강을 지키기 위한 수단이지만, 잘못된 폐기는 환경과 건강 모두를 위협하는 ‘독’이 될 수 있다. 작은 알약 하나, 작고 하얀 봉투 하나가 만들어내는 결과는 절대 작지 않다. 한국 사회가 폐의약품 문제를 단순한 생활 팁이 아닌 ‘사회적 문제’로 인식하고 체계적으로 대응해 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정책, 제도, 인식, 교육이 동시에 개선되어야 이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변화의 시작은, 약 봉투를 쓰레기통이 아닌 수거함으로 향하게 하는 ‘한 사람의 행동’ 일 수 있다. 오늘, 당신의 약 봉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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